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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얀(Trajan) 통치하의 세 번째 박해, A.D. 108년
홈지기 2014-08-30 추천 0 댓글 0 조회 207
트라얀(Trajan) 통치하의 세 번째 박해, A.D. 108년

학식 있고 이름 높던 플리니 2세(Pliny the Second)는 이 세 번째 박해 때 통치자 트라얀에게 서한을 띄웠는데, 이유인즉,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로마법에 저촉되어 박해받을 만한 이가 한 사람도 없음에도 하루에도 수천 명씩 대학살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 끓어오르는 연민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티옥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바로 이 박해 때 고난을 당했다. 붙잡혀 스머나에 당도한 그는 순교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얻도록 해 달라는 편지를 로마에 있는 교회에 띄워 순교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었고, 그후 맹수의 우리에 던져 넣으라는 형을 선고받고서 사자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들려오자 “오,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이라. 순결한 빵으로 발견되기 위해 맹수들의 이빨 사이에서 부서지려 하노라.”고 말한 후 맹수들에게 뜯겨져 순교했다.

트라얀을 뒤이어 아드리안(Adrian)이 등극했고, 그 역시 지독한 가혹함으로 이 세 번째 박해를 이어나갔다. 로마 감독 알렉산더(Alexander)가 그의 두 집사와 함께 순교했으며, 퀴르누스(Quirnus)와 헤르네스(Hernes) 그리고 그들의 가족뿐 아니라, 로마의 귀족 제논(Zenon)과 10,000명에 육박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에 넘겨졌다. 아라랏 산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떠 수많은 사람들이 가시 면류관이 씌워지고 창으로 옆구리가 찔려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특히 유스타치우스(Eustachius)라는 로마 지휘관은 그의 몇몇 전승을 축하하기 위한 우상 희생제에 참가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중히 거절했고, 이에 화가 치민 배은망덕한 황제는 이 노련한 지휘관의 공로를 잊고서 그와 전 가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파우스티네스(Faustines)와 조비타(Jovita) 그리고 브레스키아(Brescia)의 형제들과 시민들이 순교당할 때에는 고난에 대한 그들의 인내에 감탄한 칼로세리우스(Calocerius)라는 한 이교도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위대하시도다!”라고 탄성을 질렀다가 체포되어 함께 죽임을 당했다.

A.D. 138년, 아드리안이 명을 다하자 유순한 성품의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가 뒤를 이었고,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잠시 중단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통치하의 네 번째 박해, A.D. 162년 - ①

A.D. 161년경 왕위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스도인들에게 독기를 품고 사납게 굴던 이 자에 의해 네 번째 박해가 시작되었다.

어떤 순교자들은 이미 까발려진 발바닥으로 가시, 못, 뾰족한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 위를 지나가야만 했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근육과 핏줄들이 살갗 밖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채찍으로 얻어맞았는데, 그래도 부족한지 인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문들로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맛본 후 소름끼치기 짝 없는 죽임을 당했다.

젊고 신실한 그리스도인 게르마니쿠스(Germanicus)는 맹수들에게 넘겨질 때 맹수들을 비웃듯 담대한 믿음을 지켰고, 이를 지켜보던 몇몇 이교도들이 확고부동한 그의 믿음을 보고서 주님께로 회심했다.

스머나의 덕망 있는 감독 폴리캅(Polycarp)은 지방 총독 앞으로 끌려가 사형을 언도받고 시장 바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저주하라, 그러면 널 놓아줄 것이다. 그리스도를 비난해 보란 말이다!” 총독의 이 타협안에 폴리캅은 “내가 주님을 섬긴 지 86년이 흘렀어도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내가 날 구원해 주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응수했다. 화형틀에 홀로 묶인 그를 나뭇단에 지핀 화염이 아치 모양으로 휘감았지만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본 총독은 칼로 찌르라는 명령을 내렸고, 칼로 찌르자 불길을 꺼뜨릴 정도로 많은 피가 쏟아졌다.

큰 담력으로 말씀을 전파했던 주님의 일꾼 메트로도루스(Metrodorus)와 수차례에 걸쳐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탁월하게 변호했던 파이오니우스(Pionius) 역시 불살라졌으며, 카푸스(Carpus)와 파필루스(Papilus)라는 두 훌륭한 그리스도인과 독실한 믿음의 아가도니카(Agathonica)라는 여인도 아시아의 퍼가모폴리스(Pergamopolis)에서 순교했다.

로마 명가의 귀부인 펠리시타티스(Felicitatis)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슬하에 일곱 아들을 두었다. 그 중 장남 재누아리우스(Januarius)는 채찍에 맞은 후 육중한 추들에 눌려 압사했고, 밑의 두 동생 펠릭스(Felix)와 필립(Philip)은 곤봉에 맞아 뇌가 터져 나왔으며, 넷째 실바누스(Silvanus)는 절벽에서 떠밀려 추락사했다. 철없는 알렉산더(Alexander)와 비탈리스(Vitalis)와 마셜(Martial)은 참수당했고, 어머니도 그 어린 것들의 피가 묻은 칼에 목이 베어졌다.

진리를 끔찍이도 애찬하던 박식한 학자 저스틴(Justin)은 원래 철학에 심취한 철학자였지만, A.D. 133년경 서른 살에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후 처음으로 진리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가혹하게 대하자 그들을 위한 첫 번째 변호서를 작성하게 되고, 거기에 배인 뛰어난 학식과 천재성에 손을 들어 버린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리한 칙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기성사실을 멸시하고 세상을 비꼬며 비뚤어진 눈으로 보는 퀴닉학파의 크레센스(Crescens)와 잦은 논쟁을 벌이던 중 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는데, 이에 저스틴을 죽이기로 작정한 크레센스는 저스틴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두 번째 변호서를 작성했을 때 황제를 부추겨 그를 싫어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결국 저스틴과 그의 여섯 동료는 그 글로 인해 체포되고 말았다.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거절한 그들에게 채찍형과 함께 참수형이 선고되었으며, 그들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온갖 가혹한 형벌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기에 몇 사람이 주피터(Jupiter) 형상에 제물 바치기를 거절한 이유로 참수형을 당했는데, 거기에 스폴리토(Spolito) 시의 집사 콘코두스(Concordus)가 포함되었다. 그는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긴 사람답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담력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딤전 3:13).



2014년 06월 17일
바이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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