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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통치하의 네 번째 박해, A.D. 162년 - ②
홈지기 2014-08-30 추천 0 댓글 0 조회 19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통치하의 네 번째 박해, A.D. 162년 - ②

로마의 네 번째 박해 기간에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 있었다. 로마로 인해 마음 편치 못해 하던 몇몇 북쪽 나라들이 로마를 대항해 무장하고 일어서자 황제는 그들과 교전키 위해 출전했다. 그런데 그만 적군이 매복하고 있는 곳으로 빠져 들었는데, 첩첩산중 어딘가에 적들이 포진하고 있는 데다, 또 타는 듯한 갈증으로 죽을 지경이 돼 버린 그들은 이교도 신들에게 간절히 구해 보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가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를 “오 바알이여, 우리를 들으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없더라』(왕상 18:26).

이처럼 전의를 상실하고 있을 즈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민병대, 즉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뇌성 군단’ 대원들에게 “그들의 하나님께” 구조를 요청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선지자 엘리야가 가까이 나아가 말하기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이 모든 것을 주의 말씀대로 행하였다는 것이 오늘 알려지게 하소서. 내게 들으소서, 오 주여, 내게 들으시어 이 백성으로 주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왕상 18:36,37). 아니나 다를까 기적적인 구원이 그 즉시로 뒤따랐다. 폭포수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려 부대원들이 만들어 놓은 도랑을 가득 채웠고, 그로 인해 때 아닌 놀라운 구원이 찾아들었으니, 자신들의 면상에 불어 닥친 불가사의한 폭풍으로 너무도 겁에 질려 버린 일부 적들이 로마 군대로 투항하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패배의 쓴잔을 맛보게 되어 반란을 일으켰던 모든 속주들이 평상을 되찾은 것이다. 『그분의 표적들이 얼마나 위대하며 그분의 이적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단 4:3).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도다.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도다』(왕상 18:39).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위대하시도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얼마간 박해가 누그러졌다.
그러나 박해는 곧이어 프랑스, 특히 리용(Lyons)에서 맹위를 떨쳤다. 거기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했던 고문들을 말로 표현하자면 아예 입이 다물어질 지경이다. 이 순교자들 중 단연 으뜸인 이들 중에는 베티우스 아가투스(Vetius Agathus)라는 파릇파릇한 청년, 그리스도를 믿는 가냘픈 몸매의 숙녀 블란디나(Blandina), 시뻘겋게 달궈진 놋접시를 신체의 가장 연한 부위에 대고 있어야 했던 비엔나(Vienna)의 집사 생투스(Sanctus), 일전에 한 번 그리스도를 부인한 적이 있는 약골의 여인 비블리아(Biblias)가 있었고, 퍼가모(Pergamus)의 아탈루스(Attalus)와 리용의 덕망 있는 감독인 아흔 살의 포티누스(Pothinus)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블란디나로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과 다른 세 챔피언들이 원형극장 안으로 처음 끌려 들어온 날 땅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말뚝에 묶여 맹수들의 먹이감으로 노출되었다. 그녀는 그때 간절한 기도로 다른 이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어떤 맹수도 그녀만은 건드리려 하지 않는지라 그녀는 도로 감옥에 남겨지게 되었다. 그녀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원형극장으로 끌려 나왔을 때, 그녀 옆에는 폰티쿠스(Ponticus)라는 열다섯 살의 소년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이 지닌 굳은 지조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군중들은 그들을 성적 노리개로 하여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고문하고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소년은 블란디나로부터 힘을 얻어 죽기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그녀 또한 갖은 고문을 잘 참아낸 후 결국 칼로 죽임을 당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땅 위의 박해와 땅 밑의 기도”로 점철되었다. 그들의 삶은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과 지하묘지 “카타콤”으로 대변된다. “카타콤”은 로마의 땅 밑에 파 놓은 굴들로, 교회당과 무덤을 겸해 사용되었다. 초기 로마의 교회는 일명 “카타콤 교회”였던 것이다. 로마 부근에는 약 60개의 카타콤이 있으며, 그 안에서 600마일 정도의 지하 통로가 발견되었었다. 이 지하 통로들은 높이가 약 1.8미터, 폭이 1-1.5미터 정도로, 각 측면 벽에는 수평선처럼 길고 낮게 움푹 들어간 부분들이 선박의 층계식 침대들처럼 위아래로 차곡차곡 만들어져 있다. 이것들 안에는 시체들이 안치되어 있었고, 앞면이 한 판의 대리석이나 회반죽으로 이어 놓은 몇 개의 커다란 기왓장으로 봉입되어 있었다. 이 대리석 판들이나 기왓장들 위에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거나 어떤 상징들이 그려져 있다.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 모두 그들의 죽은 자를 이곳 지하 묘지들에 묻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열어젖히면 그들의 뼈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머리들이 몸에서 잘려진 채로 발견되는가 하면, 갈비뼈들과 견갑골들이 부서져 있고, 또 뼈들은 종종 불태워져 이산화탄소가 제거된 생석회(生石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무시무시한 박해 기사를 읽어 나갈지 모르나, 그 비면(碑面)들에 새겨진 비문(碑文)들은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과 승리의 입맞춤을 보내고 있다.

“마르시아(Marcia)가 평안을 꿈꾸며 이곳에 고이 잠들어 있도다.”

“로렌스(Lawrence)가 천사들의 품에 안겨 떠나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들에게 바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히 승리했도다.”

“부르심을 받고서 평안히 갔도다.”



2014년 07월 01일
바이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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