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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루스(Severus)와 함께 시작된 다섯 번째 박해, A.D. 192년
홈지기 2014-08-30 추천 0 댓글 0 조회 195
세베루스(Severus)와 함께 시작된 다섯 번째 박해, A.D. 192년

심한 병으로 몸져누워 있던 세베루스는 한 그리스도인의 도움으로 병상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후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되었지만, 무지한 군중들의 편견과 광분에 못 이겨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법령을 실행토록 하고야 만다. 기독 신앙이 눈에 띄게 활기를 얻자, 이에 놀란 이교도들은 우연발생적인 재난들의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는 그 옛날의 중상모략을 재개하는데, 때는 A.D. 192년이었다.

그러나 박해가 아무리 날뛴다 해도 복음은 찬란히 빛났고, 그 어떤 내침에도 끄덕 않는 바위처럼 원수들의 사납고 거친 공격들을 훌륭히 이겨 내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한꺼번에 로마 제국에서 빠져 나간다면 제국이 심각한 인구 부족을 겪었을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갔다.

로마 감독 빅터(Victor)는 세 번째 세기가 시작되던 해, 그러니까 A.D. 201년에 순교했다. 라이스(Rhais)는 펄펄 끓는 새까만 역청을 머리에 뒤집어쓴 후 그녀의 어머니처럼 화형에 처해졌다. 언니 포타이니에나(Potainiena) 역시 라이스와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녀의 형 집행을 맡은 바실리데스(Basilides)라는 장교가 그녀로 인해 회심하는 일이 벌어진다.

바실리데스는 이후 군 장교로서 응당 해야 할 특정 서약을 요구받자 그리스도인이기에 로마 우상들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없노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던 사람들 앞에서 거듭 굳은 결심을 표명하자, 즉시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감옥에 넘겨져 그 후 서둘러 참수되었다.

이제 박해의 불길은 아프리카로 옮겨지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그쪽 모퉁이에서 순교를 당했다.

페르페투아(Perpetua)는 스물두 살 가량의 기혼녀였다. 함께 고난당한 이들은 만삭으로 배가 부른 펠리시타스(Felicitas)와 이제 갓 신앙을 갖게 된 노예 레보카투스(Revocatus)였다. 다른 수감자 명단에는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세쿤둘루스(Secundulus) 그리고 사투르(Satur)가 있었다. 처형 당일 그들은 원형극장으로 끌려 들어갔고, 사투르와 사투르니누스, 레보카투스를 ‘사냥꾼들’ 사이에서 태형에 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도 죽지 않을 시에는 그들을 맹수들에게 넘기는 것이 관례였다. 사냥꾼들이 두 줄로 늘어서자, 그들은 사냥꾼들 사이로 뛰어들어 지나가면서 가혹하게 난타를 당했다. 펠리시타스와 페르페투아는 발가벗겨진 채 미친 황소에게로 던져졌는데, 그 미친 소는 페르페투아를 들이받아 기절시킨 뒤, 쏜살같이 펠리시타스에게 돌진해 무참히 받아 버렸다. 그 일로도 죽지 않은 그들을 사형 집행인이 칼로 숨통을 끊어 버렸다. 결국 레보카투스와 사투르는 맹수들에 의해, 사투르니누스는 참수형으로, 세쿤둘루스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일들은 A.D. 205년 3월 8일에 집행되었다.

스페라투스(Speratus)와 다른 20명도 역시 목 베임을 당했다. 프랑스의 안도클레스(Andocles)도 마찬가지였다. 안티옥의 감독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는 숱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로마 명가 출신의 숙녀 세실리아(Cecilia)는 발레리안(Valerian)이라는 신사에게 시집을 갔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동생을 주께로 인도했고 그 둘 모두 참수를 당했는데, 그들의 형 집행을 담당한 장교가 그들로 인해 회심하게 되어 그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다. 세실리아는 물이 펄펄 끓는 욕조에 알몸으로 담궈졌고, 꽤 시간이 지난 뒤 칼로 목 베임을 당했다. 이 일은 A.D. 222년에 일어났다.

로마 감독 칼리스투스(Calistus)는 A.D. 224년에 순교했으나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로마 감독 우르반(Urban)도 A.D. 232년에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다.

막시무스(Maximus) 통치하의 여섯 번째 박해, A.D. 235년

A.D. 235년은 막시무스가 통치하던 때였다. 캅파도키아(Cappadocia)에서는 그곳의 총독 세레미아누스(Seremianus)가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 그 지방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려 하였다.

이 통치하에 죽은 주요 인물들에는 로마 감독 폰티아누스(Pontianus)와 그리스 사람으로 그의 후계자며 순교자들의 행적들을 수집하러 다니다 정부의 미움을 산 안테로스(Anteros), 로마 원로원 의원 팜마치우스(Pammachius)와 퀴리투스(Quiritus), 그리고 그들의 전 가족과 다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또 원로원 의원인 심플리시우스(Simplicius)와 티베르(Tyber)로 추방당한 주님의 일꾼 칼레포디우스(Calepodius), 고귀하고 아름다운 처녀 마르티나(Martina), 거칠게 날뛰는 야생마에 줄로 매달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땅바닥에 끌려 다녔던 주의 종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있다.

막시무스가 일으킨 이 박해 기간 동안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재판정에 서 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한 후 그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이며 매장되었다. 어떤 때는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이 한꺼번에 오륙십 명씩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다.

날마다 썩어가는 육신이 죽어 이토록 가치 없이 내버려졌다 해도,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주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로다』(시 116:15). 이제 곧 구속받은 몸으로 부활하면, 그 날 박해받던 성도들의 죽음이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웠다는 것을 온 천하 만물 앞에 입증될 것이다.



2014년 07월 15일
바이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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