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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시안(Diocletian) 통치하의 열 번째 박해, A.D. 303년 ①
홈지기 2014-08-30 추천 0 댓글 0 조회 196
디오클레시안(Diocletian) 통치하의 열 번째 박해, A.D. 303년 ①

“순교자들의 시대(the Era of the Martyrs)”라고 일컬어지는 이 열 번째 박해는 디오클레시안의 양자인 갈레리우스(Galerius)의 증오가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그는 완악하기 그지없는 이교도 어머니의 부추김을 받아 황제를 끊임없이 설득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는 목적을 이루었다.

A.D. 303년 2월 23일은 테르미날리아(Terminalia)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잔인한 이교도들은 그날 기독 신앙을 뿌리째 뽑아 없애기를 원했고, 박해는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시 관원들은 장교들과 병력을 대동하고서 교회에 들이닥쳤고, 문을 떠밀어 부수고 들어가 성경이란 성경은 모두 모아 불태워 버렸다. 이 모든 만행의 현장에는 디오클레시안과 갈레리우스가 함께했는데, 그들은 이 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 건물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이후 다른 모든 교회들과 성경들도 부수고 소각하라는 칙령이 선포되었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모든 법적 은전(恩典)과 보호를 박탈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즉시 순교가 뒤따랐다. 이는 한 담대한 성도가 그 포고문을 벽에서 뜯어내어 찢어버리고 황제의 이름에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은 그를 붙잡아 처참히 고문한 후 산 채로 불살랐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붙잡아 투옥시켰다.

오로지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이 이교도들을 지독히도 역겹게 만들었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중상에 희생되었다. 수많은 가옥이 불살라지고 주님을 믿는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불길 속에서 몰살당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목에 돌덩이를 매달고 한데 묶여진 채 바다로 내몰렸다. 박해는 로마 제국 도처에서 10년 동안 대대적으로 지속되었기에 순교자들의 수와 만행의 방식을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고문대, 채찍, 서슬 퍼런 칼날, 단검, 십자가 형틀, 독약 그리고 굶주림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 각지에서 사용되었고,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기 위한 기구들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발명되었다. 대학살을 자행하다 스스로 지쳐 버린 몇몇 지방 총독들은 이와 같은 박해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을 황궁에 올리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형으로부터는 한숨을 돌리게 되었으나, 대신 귀가 잘리고, 코를 째이고, 오른쪽 눈만 도려내지고, 관절이 무참히 탈구되어 팔다리를 못 쓰게 되고, 새빨갛게 달궈진 쇳덩어리로 눈에 잘 띄는 신체 부위가 지져지는 바람에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게 되었다.

저명한 순교자 세바스티안(Sebastian)은 골의 나본(Narbonne)에서 태어나 밀란(Milan)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은 후 로마의 친위대 장교가 되었다. 그는 우상 숭배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지켰는데, 황제는 이교도가 되기를 거절하는 그를 캠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라는 로마 근교의 벌판으로 데려가 화살로 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형 선고는 그대로 집행되었다. 그러나 시신을 땅에 묻으려던 성도들이 그에게 숨이 붙어 있는 것을 알고서 즉시 안전한 장소를 옮겨 극진히 간호했다. 세바스티안은 빠르게 회복했고, 이것은 두 번째 순교를 위한 준비였다. 외부로 돌아다닐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그는 이교도 사원으로 가고 있는 황제를 가로막고 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처사들과 상식에서 벗어난 편견들을 꾸짖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난데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황제는 정신을 가다듬은 즉시 그를 황궁 근처로 끌고 가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시체를 공용 하수구에 던져 넣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몸을 회복시키거나 땅에 묻는 일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루시나(Lucina)라는 여성도가 기어코 시신을 하수구에서 끄집어내더니 지하 납골당인 카타콤에 안치시켰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중히 숙고한 끝에 이교도 황제의 통치하에서 그리스도인을 죽이는 병역에 복무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로써 파비우스 빅토르(Fabius Victor)의 아들 막시밀리안(Maximilian)이 첫 번째로 참수당했다.

비투스(Vitus)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명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으며 자랐다. 부친 훌라스(Hylas)는 이교도였는데, 아들이 보모에게서 기독 신앙의 교리를 배운 것을 알아차리고서 다시 이교 신앙으로 되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노력이 실패하자, 결국 A.D. 303년 6월 14일 자기 아들을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쳐 버렸다.

빅토르(Victor)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훌륭한 가문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밤이 되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자기 재산을 털어 가난한 성도들과 병자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결국 막시미안의 포고령에 따라 붙잡혔고, 그를 묶어 거리에서 끌고 다니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가 여전히 믿음을 굽히지 않자, 막시미안은 그로 하여금 고문대 위에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했다. 빅토르는 고문 중에도 두 눈을 주님 계신 하늘 나라로 들어올리고서 인내를 주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감탄을 자아낼 만큼 조금도 흔들림 없이 고문을 견뎌 내었다. 고문하던 형 집행인들이 녹초가 돼 버리자 그는 이번엔 지하 감옥으로 옮겨졌고, 갇혀 있는 동안 알렉산더(Alexander), 펠리시안(Felician), 롱기누스(Longinus)라는 이름의 수감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다. 그러나 이 일을 들은 황제는 그 수감자들을 참수해 버렸다. 빅토르는 그 후 또다시 고문대에 눕혀져 막대기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고서 재수감되었다. 신앙에 관한 세 번의 심문에도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자 이번엔 작은 제단을 들여와 그에게 그 위에 향을 피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요구에 타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빅토르는 몇 발짝 앞으로 가더니 제단과 우상에게 발길질하여 한꺼번에 넘어뜨려 버렸다. 지켜보던 막시미안은 제단을 걷어찬 그 발을 당장에 잘라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빅토르는 제분기 사이로 던져졌고, 맷돌들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어졌다.

타소(Tarsus)에 근무하는 킬리키아(Cilicia)의 총독 막시무스(Maximus) 앞에 노인인 타라쿠스(Tarachus)와, 프로부스(Probus),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즉 3명의 그리스도인이 끌려왔다. 고문에 고문을 당해도 믿음을 부인하지 않자 마침내 사형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원형 경기장에 끌려온 그들에게 대여섯 마리의 맹수들이 들여보내졌지만, 짐승들은 굶주렸음에도 털끝 하나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사육자가 그날 3명을 죽인 큰 곰 한 마리를 들여보냈지만,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 피조물도 그들을 건드리기를 꺼렸다. 야수들로 죽이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막시무스는 그들을 칼로 베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그렇게 순교했다. 이 일은 A.D. 303년 10월 11일에 일어난 일이다.


2014년 08월 12일
바이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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