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교회사

  • 성경공부 >
  • 신약교회사
교황이 저지른 박해들 (2)
운영자 2014-10-04 추천 0 댓글 0 조회 88
파리에서 있었던 성 바돌로매의 대학살

피가 낭자했던 이 마귀적인 만행은 프로테스탄트의 뿌리를 단번에 뽑아 버리려는 의도로 1572년 8월 22일에 시작되었다. 프랑스 국왕은 여동생과 프로테스탄트들[16-17세기 프랑스의 위그노 교도들(Huguenots)]의 수장이자 거두인 나바르의 군주 꼴리니(Coligny, the prince of Navarre) 사이의 결혼을 교활하게 제의했다. 이 신중치 못한 결혼은 8월 18일 파리에서 부르봉(Bourbon)의 추기경의 주례로 공개적으로 치러졌다. 그들은 교황이 함께한 자리에서 성대한 만찬을 들었고, 파리에서는 국왕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이 일이 있고서 나흘째 되던 날, 군주는 의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양팔에 총상을 입었다. 그는 도망가라는 충고를 거부하고 파리에 머물렀으며, 얼마 안있어 방주(Bemjus)에게 살해되었다.

사령관 꼴리니가 죽은 뒤 한 지령이 떨어졌다. 즉 신호가 떨어지면 시 전역에서 즉각적으로 학살을 감행하라는 것이었다. 사령관을 죽인 그들은 그를 창문 밖 길바닥으로 내던졌고, 거기서 그의 머리가 베어져 교황에게로 보내졌다. 이것을 만족 못한 그 흉악한 로마카톨릭 교도들은 그의 양팔과 음부를 잘랐고, 시체를 길거리 여기저기에 3일 동안 질질 끌고 다니다가 발목을 밧줄로 묶어 시 외각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 외에도 그들은 위대하고 훌륭한 많은 프로테스탄트들, 즉 로쉬푸꼴 백작(Count Rochfoucault), 죽임 당한 사령관의 사위인 뗄리니우(Telinius), 앙또뉴(Antonius), 라벨리(Ravely)의 후작인 끌라리몽(Clarimontus), 루이 부슈(Lewes Bussius), 방디뇌(Bandineus), 쁠루비알류(Pluvialius), 부르네유(Burneius) 등과 같은 이들을 살해했다. 그들은 일반 프로테스탄트들에게도 들이닥쳐 처음 3일 동안 모든 계층과 신분을 망라하여 10,000명에 이르는 성도들을 죽였다. 시체들이 강물 속에 던져졌고, 피가 세찬 물줄기처럼 거리들을 흘렀으며, 강물은 이내 핏줄기가 된 듯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시작된 이 대학살은 프랑스 구석구석으로 번져갔다.

오를레앙(Orleans)에서는 1,000명이, 루앙(Rouen)에서는 6,000명이 살해당했다. 멜디뜨(Meldith)에서는 2,000명이, 리용에서는 800명이 학살당했다. 오구스또보나(Augustobona)에서는 파리의 대학살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즉시 성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야만적으로 살해했다. 동일한 잔혹 행위가 아바리꿈(Avaricum), 뜨로이(Troys), 뚤루스(Toulouse), 루앙(Rouen)뿐 아니라, 시에서 시에 이르는 다른 많은 지역들과 소도시, 촌락 등 프랑스 전역에서 자행되어 약 100,000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난도질당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는 사악한 기쁨 가운데 거창한 축제일과 기념일을 지정했다. 프랑스 국왕 역시 위그노 교도들의 씨를 말렸다는 결론을 내리며 기쁨을 감추지 말고 마음껏 축제를 즐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학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몸값으로 상당량의 돈을 지불한 많은 사람들이 그후 즉시 살해되었다. 보호와 안전을 보장하겠다던 왕의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몇몇 마을의 주민들은 약속만 믿고 제 발로 투항했건만 곧바로 죽임을 당했다.

보르도(Bordeaux)에서는 어느 불한당 같은 수도사의 선동으로 264명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블루아(Blois)로 진군해 들어가던 기스 공작은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이게 했고, 메르(Mere)로 진격해 들어가서는 동일한 난행을 저지르며 까세보뉴(Cassebonius)라는 목사를 강물에 던져 넣었다. 앙주에서는 알비아뀨(Albiacus)라는 목사를 죽였고, 많은 여인들을 욕보인 후 그 자리서 살해했다.

랭(Turin)의 장관은 양다리를 위쪽으로 하고 머리와 가슴이 강물에 잠긴 채 매달리게 되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 그들은 그의 배를 갈라 열고 창자를 뜯어내어 강물에 던졌으며, 그 후 그의 심장을 창날에 꽂고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바르(Barre)에서는 철모르는 아이들의 배를 찢어 열고 창자를 끄집어낸 후 이빨로 그것들을 깨물어 끊어 버렸다. 성으로 달아났던 이들은 항복했을 때 거의 대부분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마띠스꽁(Matiscon) 시에서는 팔다리를 자른 후 죽이는 일을 오락으로 여겼고, 그들은 자신들의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껑충껑충 기막히게 잘 뛰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라고 말하며 프로테스탄트들을 높은 다리에서 강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뻬나(Penna)에서는 300명을 짐승 죽이듯 죽였고, 알비아(Albia)에서는 주일에 45명을 살해했다. 논(Nonne)에서는 시 전체가 보호를 조건으로 투항했으나 무차별적으로 살해되었다. 곳곳에 핏물이 흘러내렸고, 집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남편과 함께 숨어 있던 곳에서 끌려나온 한 여인은 처음엔 잔인한 군사들에게 욕보임을 당하더니, 그후 병사들의 강요로 칼을 억지로 손에 쥐고 그들의 완력에 밀려 그것을 남편의 뱃속에 찔러 넣고 말았다.

사마로브리져(Samarobridge)에서 그들은 100명 이상의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였고, 앙띠시도(Antisidor)에서도 100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그 중 일부는 옥외 변소에, 나머지는 강물에 버려졌다. 오를레앙에서 투옥되었던 100명은 격노한 군중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마귀들려 발광하던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도피한 로셸의 프로테스탄트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국왕은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군사력을 로셸 한 곳에 파견했고, 장기간의 포위공격으로 22,000명 중 18,000명을 아사시켰다. 그러나 매번 공격할 때마다 부딪친 저항이 만만치 않은지라 국왕의 군대는 132명의 대장들을 그 병사들과 함께 죽은 채로 벌판에 남겨 두어야 했다. 결국 포위 작전은 국왕의 친형제요 폴란드(Poland)의 왕으로 선포된 앙주 공작(duke of Anjou)의 요청으로 막을 내렸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당했던 비극적인 고통들은 삘립 드 도(Philip de Deux)가 당한 고통을 보면 그 개념을 잡을 수 있다. 이 순교자를 그의 침대에서 죽인 악랄한 살인자들은 산파의 도움으로 출산을 하려는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갔다. 아기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살인을 멈추어 달라는 산파를 그들은 단검으로 푹 찔러 버렸다. 산모는 죽음을 면하려고 곡물 창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뒤쫓아 와 그녀의 배를 찌르고 길바닥에 내던졌다. 내동댕이쳐지는 충격에 그만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아기가 나오고 말았는데, 로마카톨릭 불한당들 중 하나가 아기를 들어 올려 칼로 찌른 뒤 강물 속에 던져 버렸다.


 
바이블파워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다음글 교황이 저지른 박해들 (1) 운영자 2014.10.04 0 125

480848 경기 의정부시 둔야로45번길 33, 2층 TEL : 010-7314-6560 지도보기

Copyright © 의정부독립침례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5
  • Total27,176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